목록내 친구의 부도덕성에 관하여 (10)
Lassitude
# 아카데미의 외진 회랑에는 아카데미를 빛낸 인물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대 총장들의 초상화가 그려진 회랑은 일반 학생들은 잘 다니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배움의 길을 걷는 자들은, 응당 학문의 발전을 이뤄낸 선배에게 옅은 분노를 가지기 마련이다. 루카스는 이곳에서 카티올을 찾는 중이었다. 지금쯤이면 어디 꼬꾸라져서 졸고 있을 시간인데. 이 근처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는데. 카티올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고,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야!” 불쾌함의 근본이 저거였나. 키이스가 드레스 자락을 휘날리며 루카스의 앞까지 달려왔다. 키이스는 사납게 검지 손가락을 찔렀다. “듣지도 않는 과목 과제를 니가 왜 챙겨가? 이 미친놈이.” 내지른 손가락은 루카스의 목젖 앞까지 나왔다. 루카스가 저 손가락을 분..
# “카티올, 이게 완성작품이야?” 데이지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캣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걸로 해도 괜찮겠어?” 캣시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게 최선이야.” 데이지는 단호한 캣시의 주장에 난감한 얼굴을 했다. “지금 내면 다시 못 받는데.” “괜찮아.”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이게 사람인지 알아볼 정도는 됐다. 데이지의 반응만 봐도 그렇다. 적어도 이 그림이 인외생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잖아. 캣시는 스스로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곤충이 하룻밤만에 사람이 되다니. 이 정도면 신이 인간을 만든 일에 버금가는 창조력이 아닐까. 피곤에 찌들린 캣시는 답지 않은 허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카티올, 이건….” 데이지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
# “카티올, 미학 과제 끝냈어?” [미학의 철학] 수업을 같이 듣는, 동급생 데이지의 질문에 캣시는 깜짝 놀랐다. “아직 기간 남았잖아?” “응. 그런데 교수님이 일찍 제출하는 사람한테는 가산점을 주신다나 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가산점이 더해지면 낙제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캣시는 귀를 쫑긋거렸다. 데이지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하듯이 목소리를 낮췄다. “지난번 쪽지 시험 때문인가 봐. 그 교수님이 가산점을 주는 건 이게 처음이래.” 캣시도 들은 바가 있었다. 지난번에 있었던 쪽지 시험에서 만점자가 무려 다섯이나 나왔다고 했었나. 학생들이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교수님이 좀 기분파 같기는 했었지. 캣시가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까지 내야 하는데?”..
# “어딨어?” 키이스는 루카스의 이름을 부르는 귀찮은 짓은 하지 않는다. 키이스와 루카스 사이는 서로 친밀하게 이름을 부르고, 다정하게 대화를 하고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이렇게 복도에서 만나면, 가깝게 붙어서 본론만 간단히 전달했다. 오늘 찍은 낮잠터에서 이미 2번이나 허탕을 친 키이스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해가 지면 잠이 드는 게 본래 자연의 섭리이거늘. 캣시는 겉보기에 무해한 유기농처럼 생겼지만, 일상은 유해한 무기농처럼 막사는 것 같았다. 키이스는 평판을 생각해서라도, 지루한 수업 시간에도 졸았던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캣시는 조용하다 싶으면 눈이 끔뻑이며 졸았다. 키이스는 기분이 나쁘면 중간에 조퇴를 했지만, 캣시는 아주 가끔 수업을 하루종일 제쳤다. 학교를 빼먹는 것도 스릴이 넘치는 경험이..